"부동산 시장 원인은 공급이 아니라 품질"
"미분양 매입 요구하려면 분양원가 공개해야"
"공공주택 적정이윤 10~20%가 적정"
"토지임대부 주택이 아파트 가격 잣대될 것"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그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로 지어진 공공주택은 민간 건설사가 공급하는 아파트에 비해 품질이 저열하다는 인식을 받아 왔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엘사’(영화 '겨울왕국' 여주인공 이름을 본뜬 LH 임대주택 거주자), ‘휴거’(LH 임대아파트 브랜드 '휴먼시아' 거주자) 등 공공주택과 입주자를 향한 혐오 발언이 유행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또한 LH의 주거 브랜드인 ‘안단테’는 주변의 부정적 인식을 우려한 입주자들이 단지 이름에서 떼어내 달라고 읍소하는 등 굴욕을 받기도 했다. 공공주택 뒤에 '주홍글씨'처럼 따라 다닌 부정적 평가는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을 더욱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금까지 총 5개 사업지의 건설원가를 스스로 공개하는 한편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을 도입해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는 파격적 정책을 선보인 것이다. 

전반적인 청약시장이 얼어붙었지만 SH의 승부수는 일단 먹혀들었다. 지난달 27~28일 SH가 진행한 ‘고덕강일3단지’의 특별공급(500가구) 사전예약은 1만 3000여명이 몰리며 33.2대 1의 평균경쟁률로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청년특별공급이 75세대 모집에 8871명이 몰려 최고 118.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주간한국>은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SH 본사에서 김헌동 사장을 만났다. 김 사장은 2004년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부동산 시장 개혁을 주장했던 인물로 지난 2021년 11월 SH 사장으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우리가 민간 기업들처럼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데도 신청하는 분들이 많다.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할 것 같다"며 청약 흥행을 자신했다.

-'고덕 강일' 등 신축 공공주택이 저렴한 가격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공급 중인 ‘고덕강일3단지’의 분양가는 평형 59㎡ 기준 3억5500만원, 공사비는 대략 3억원 수준이다. 분양가는 낮지만 공사비는 예전보다 많이 올렸다. SH에서 공급한 기존 아파트의 분양원가인 2억원인데 공사비만 계산해도 이것보다 1억원 더 많다. 증가분에는 물가 상승분도 들어갔지만 품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7000만원을 추가한 것이 컸다. SH는 이제부터 공급하는 아파트는 100년 이상 쓰겠다는 계획으로 신축 단지의 품질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고덕강일3단지 투시도. (사진=SH 제공)
고덕강일3단지 투시도. (사진=SH 제공)

-주로 공급부족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거론됐는데 품질을 강조한 것은 특이하다.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공급이 아니라 품질이다. 품질이 좋으면 위치가 조금 나빠도 사람이 산다. 유럽 등은 지은 지 200년, 300년 된 집도 고쳐서 계속 쓰는데 우리는 30~40년 만에 부수고 다시 짓는다. 다른 나라가 한 번만 지을 것을 우리는 다섯 번 공사해야 하는 셈이다.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 그럴 바에는 한번 지을 때 비용을 한 10~20퍼센트 더 들여서 100년, 200년 쓰자는 것이다."

-공급 규모의 목표는 어느 정도이고 전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는가.

"정부와 서울시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포함한 공공주택 50만채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고덕강일3단지 건물분양주택 사전예약은 500세대 규모로 진행된다. 공급 목표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향후 마곡, 고덕 강일 등 SH공사 보유 택지를 활용해 건물분양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나아가 준공 30년이 도래한 임대주택 단지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용적률을 높여 세대 수를 늘리고, 그 일부를 건물분양주택으로 공급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타워팰리스에 버금가는 고품질의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짓는 계획인가.

"아직 위치를 밝힐 수는 없다. 공급 구상만 말한다면 약 60층 높이 건물에 윗층 세대는 분양하고 아래는 임대해 한 개 동에 분양과 임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보유 재산의 차별 없이 한 아파트에 여러 형태의 계약자들이 거주한다. 최고급 아파트의 1개 동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놓으면 둘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가령 타워팰리스도 임대가 있지만 워낙 고급 아파트다보니 임대 거주자라고 낮잡아보는 인식이 없지 않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공주택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오 시장도 ‘임대주택을 타워팰리스처럼 최고급으로 짓자’는 데 의견이 같다. 타워팰리스급 공공주택은 내가 발표하는 것보다 오 시장께서 직접 발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초 신년 업무보고에서 오 시장은 고품질의 공공주택 공급을 주문했고, 지난해 여름 싱가포르의 피나클 앳 덕스톤에 동행했을 때도 고품질 초고층 공공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새 공공주택은 외장과 내부 마감재를 고급화하고 뼈대도 고강도 콘크리트를 써 수명을 대폭 늘릴 것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최고급으로 지어도 건축비가 이전보다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고품질 임대아파트가 등장하면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부동산 시장 평가

-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향세인데 전문가로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전 정권에서 치솟은 집값은 ‘가짜 수요’였다.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 집값이 뛰니까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패닉 바잉'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시장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가 났던 거다. 지금 정부는 규제를 다 풀어버렸다. 시장에 맡겨두니 집값은 떨어졌다. 지난 2021년 7월 11일,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윤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을 깨야 된다’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도 기득권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오 시장도 ‘집값이 2017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야 된다’라고 했다."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이제는 미분양이 오히려 문제인데.

"성남 대장동 개발이나 시흥, 광명의 LH 개발에서 보듯이 경기도는 땅 한 평 당 100만원이면 살 수 있다. 건축비는 600만~800만원이다. 원가가 평(3.3㎡)당 1000만원이 안 된다. 이걸 4억원에 분양하면 25%, 4억 5000만원이면 40%가 남는다. 그동안 이런 주택을 의왕 12억원, 동탄 11억원, 안양 9억원, 고양 7억원, 남양주 8억원, 하남 10억원 등으로 팔아왔다. 원가보다 2~3배 올려 파는데, 안 팔리는 게 정상이 아닌가?"

-부동산 개발로 기업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가.

"적정이윤이 있기 마련이다. 고가의 집을, 그것도 공공택지를 받아서 판다면 10~20% 정도가 적정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원가의 두 배, 세 배를 남겨왔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라는 요구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건설사들이 적어도 자기들 분양원가는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무턱대고 국민 세금으로 바가지 집값을 떠안는 건 말이 안 된다."

토지임대부 주택

-토지임대부 주택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가.

"건물 3억 5000만원에 토지 임대료가 월 40만 원이다. 40만 원은 금리가 4%일 때 은행에서 1억원을 빌리면 내는 돈이다. 3억 5000만원에 1억원을 더 들여 4억 5000만원에 집을 사는 셈이다. 대신 그 집은 100년 동안 살 수 있고, 중간에 팔아 시세차익을 볼 경우 10년 이내는 70%, 10년 이상 살면 시세 차익이 전부 내 것이 되는 주택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이 중요한 것은 적정 집값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SH보다 좋은 아파트가 아니라면 건물 가격을 3억 5000만원 이상 못 받는다’는 식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이유로 토지임대부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집을 사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에서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사실 거주 목적이라면 땅을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건 아니다. 땅을 가지면 세금만 늘어난다.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시세차익이 적은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반 아파트라면 전세만 5억~6억원이 필요한 주택을 토지임대부를 통해 3억 5000만원에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권이 생긴 것이다."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공급하는 공공주택이 줄었다는 비판도 있다.

"분양가에서 할인했다고 해도 SH가 직접 짓는 것보다는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SH가 직접 만들면 반값인 걸 웃돈 주고 산다면 그것이 시민이 박수칠 일인가. 또 다른 문제는 공정성이다. SH가 임대주택을 만들 때 회사 돈과 세금이 든다. 서울시 주택에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지방의 국민들이 낸 세금까지 들어간다. 그렇게 산 집을 보증금 2000만원, 월세 20만원에 서울시 청년들에게만 공급하면, 일부 청년만 ‘땡 잡는 것’이다. 그게 바람직한 일인가?"

"SH공사는 천만 시민의 것"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김헌동 SH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강남구 SH 본사에서 진행한 주간한국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실제 정책을 실행해보니 감회가 어떤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2월 ‘아파트값 거품 빼기 운동 본부’에서 초대 본부장을 맡은 뒤로 19년이 지났다. 시민운동가의 일은 시민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공기업 사장은 회사 주주인 시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리는 바뀌었지만 역할은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우리 회사 주인은 시민들이고 나는 그들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임기 동안 목표는?

"이제 공기업도 다른 공기업, 또는 민간 건설사들과 함께 품질 및 서비스 경쟁을 해야 한다. ‘민간 브랜드 아파트랑 경쟁해봐라. 우리가 못한 게 있나. 더 낫다’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공사의 목표는 1000만 서울시민이 집 걱정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아주 품격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 더 좋은 품질,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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